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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도 아시안게임의 경기 결과

by 윈드포르스

대한민국은 금메달 93개, 은메달 55개, 동메달 76개를 획득하여 금메달 94개, 은메달 82개, 동메달 46개를 획득한 중국에게 한 끗 차이로 밀렸다.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아시안 게임에서 종합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12] 그래도 금메달 수가 아닌, 전체 메달 수에서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1위를 차지하게 되면서(대한민국 224개, 중국 222개) 엄청난 성과를 보인 아시안 게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크게 작용했다.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에 비해 개최국이 경기종목을 선정하는 방식에 있어서 권한이 더 많다. 

 

 

특히 양궁 같은 경우, 이미 당시 세계대회가 그랜드피타 방식[13]으로 경기를 했었는데, 서울 아시안 게임의 경우 과거의 방식이었던 더블라운드 방식[14]을 채택했었다.[15]

대한민국은 복싱 12체급을 전부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다.[16][17] 도리어 태권도는 8체급 중 하나를 놓쳤다.

유도는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채택되었으며, 이때 일본 유도가 대한민국에 초전박살이 났다. 금메달 8개(7체급+무제한급, 남자부만 실시) 중 대한민국이 6개(+은 1, 동 1), 일본이 2개를 가져갔다.


유치경쟁에서 밀려서 감정이 상한 북한에 동조한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라오스, 몽골, 남예멘, 시리아가 대회를 보이콧하였다.[18] 이처럼 시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사회주의 관련 불참국들은 2년 전 올림픽에도 불참한 반면,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불참국들은 2년 후 열린 1988 서울 올림픽에 모두 참가하였다. 

 

이에 따라 참가국 수가 직전 대회인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직후 대회인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보다 적었다. 그냥 중국 빼고 공산권 몽땅 불참이라고 보면 된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쓴 잣대를 갖다댄다면 서울 아시안 게임도 충분히 반쪽 대회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당시에도 공산권의 집단불참은 거의 언급 없었다. 하지만 중국 하나 덕에 이들의 부재감이 사라진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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